'잘 만나는 것보다 잘 헤어지는 게 더 중요하다'
작가는 이 문장에 '잘 헤어지는 것이 그 사람의 성숙도를 판가름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내 내 머리 속에 한 장면이 떠올랐고 나는 스크린에서 관객석을 바라보지만 실제로는 나를 볼 수 없는 영화 속 주인공의 눈동자를 대하듯 그 장면 속 사람에게 건방지게 '그래 넌 미성숙했었지..'라고 말했다. 그러는 동시에 '반면에 난 얼마나 성숙했던가'라고 생각하며 잠시 내 자신의 인격에 대한 우월감에 도취해 있었다.
살면서 한 번의 이별 만을 겪은 것은 아니기에 자연스레 나의 의식은 반추를 시작했고, 비록 그 애는 울었지만 환한 대낮 캠퍼스에서 꽤 깔끔하게 이별을 고했던 일도 떠올라 '그럼 그렇지' 라고 생각하며 나의 성숙도에 대한 확신에 증거를 더하던 중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너무 부끄러웠다. 기억이 희미하던 최근 연애의 끝 난 그냥 잠수를 타버렸던 것이다. 흐지부지 했던 연애의 끝물과 함께 정당화하기 어려운 나의 행동을 까맣게 잊은 채 최근까지 이어졌던 그 사람의 전화와 문자에 정말 끈덕지다며 화를 냈었다. 나 같은 것은 더 만나볼 가치도 없다고 판단해도 내게 전혀 억울하지 않을 처사일 법한데 수개월간 인내심을 갖고 나의 안부를 물어온 그 사람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 사람과의 '연애'라 불리는 사연에 얽힌 복잡한 사정을 차치하고, 그 사람이 나의 'Love of life'의 목록에 들어가는 지의 여부를 차치하고 그 사람 덕에 얼마간의 시간을 외롭지 않게 보낸 것은 분명한데 너무 일방적이고 이기적이었다는 생각이 이제서 든다. 그 때 내 심장이 어쩜 그리 무심했을까? 유리한 기억으로 끼워맞추던 나의 '성숙함'은 어느새 바닥에 내동댕이 쳐져 있다. 나라는 인간 이렇게 치사하기도 하구나.
나의 첫사랑은 나의 애정이 성에 차지 않았는지 섭섭한 마음에 나에게 이별을 고했다. 그의 투정이 이해가 가지 않았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만 나는 그를 붙잡지 않았다. 순탄하기만 바랬던 우리의 이야기를 악을 쓰는 장면으로 더럽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간단히 굴복했고 아주 행복하게 읽었던 동화책은 다시 펼치지 않는 것이 처음의 감흥을 오래 간직하는 방법이라 믿었다. 얼마 후 그 애가 먼저 연락했을 때 비로소 깨닳았다. 그 애는 나와 정말 헤어지고 싶언던 게 아니라 투정을 부린 거였다고. 하지만 동화책을 다시 펼치지 않으려는 나의 다짐은 너무 강했고 그 애의 방법은 잘못된 것이었다.
계속 이어지던 전화와 문자에 알았다고 조만간 밥을 한 번 먹자고 얘기해 놓고 또 바쁜 척을 했었다. 그가 아직 나에게 떨어질 정이 남아있다면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정중하게 다시 헤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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