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13일 목요일

실패했을 때
다른 것도 아니고 가장 먼저 엄마의 눈이 떠오른다.
그 눈은 바로 놀리는 눈이다. 호기심이 좀 함유된 놀리는 눈.
그게 너무 기분 나쁘다.
우리 엄마는 실패했다고 화내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놀리고 초라하게 만든다.

오늘도 나의 작은 실패 소식에 엄마는
나를 위로해주지 못할 망정 자신감 없게 만들고 초라하게 만들었다.
따끔한 소리도 필요하지 않냐면서 악담을 늘어놓는다.

나는 저학번 시절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는데 밤마다 불안해서 벌벌 떨었다.
나는 항상 내가 뭘 해도 집에서 지원해 주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우주에 나 혼자 있는 느낌이다.
내가 잠깐 돈을 벌었을 때 부모에게 돈 한푼 가져다 주지 않은 것도
내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엄마아빠가 돈 한푼 줄 것 같지 않아서 내가 다 모으려는 심산이었다.
아무것도 기약되지 않은 시험 준비를 몇년 씩 하는 친구들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진다.
부모님을 어떻게 믿고? 1년 동안 돈도 못벌고 공부만 해야되니 나 좀 지원해달라고 나는
부모에게 절대 말하지 못할 것 같다. 


힘들다고 실패했다고 내색도 못하고 아무도 기댈 사람 없이 벌벌 떨면서 의연한 척 지내는 내 속마음을
우리 부모가 알랑가 모르겠다. 이런 기분이 너무 싫고 해결하고 싶은데 잘 모르겠다. 
우리엄마는 엄마대로 오래 살아서 자기 스타일을 바꾸려나 모르겠다.

지금은 티비 보면서 히히덕 거리신다. 

어떻게 해야하나요? 

2013년 11월 22일 금요일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사람의 운명

퇴사하고 거의 7개월 째 푹 퍼져있다보니
처음에 놀기 시작할 때 사람들이 노는 것도 재미가 떨어지는 날이 올 것이다라고
하는 말이 믿기지 않을 만큼
뭐 유럽으로 여행도 다녀왓겠다 회사그만두고 후 얼마간 날씨도 너무 좋았고 집에서 빈둥빈둥 책이나 읽고 영화나 보다 잠들기 일쑤인 생활이 너무 좋았는데 역시나 나에게도 그 날이 왔다. 약간 무료하다.
어쨋거나 반년이 지나다 보니 솔직히 말하면 뭐라고 해야할까 안이하게 생각했던 내가 원하는 일 자리를 얻을 수 없었다. 그래서 지난 6개월이 자발적 실업 상태라면 요번 달 부터는 비자발적 실업상태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당황스럽기도한 반면 원래 신선코스프레에는 도가 텄기 때문에 덤덤한 척하다 진짜 덤덤해 진 것 같기도 하다. 잘 모르겠다.
얼마전에는 별로 슬픈일이 없지만 아무 의욕도 없고 누우면 그냥 눈물이 또르르 떨어지는 이것이 우울증인가? 하는 무서운 상태에도 도달 한 적이 있다. 다들 살기 힘들다고 하는 판이니 남들한테 투정부리는 것을 내켜하지 않는 편인데 그냥 농담인 듯 나의 자칫 심각한 심리상태를 몇명한테 얘기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돌봄을 받아서 놀랍고 많이 고마웠었다.
암튼 요즘에는 나름 규칙적으로 운동도 하고 코앞으로 다가온 외국어 시험도 공부하다 보니 그냥 뭔가를 하면서 살긴 하지만 그래도 딱히 뭔가 노력했다고 느끼지 못하는 허무한 상태로 하루가 지나간다고 느끼긴한다.
요즘 자주 적어본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 중에 원하면 불행해지기 때문에 원하면 안되는 것, 내가 잘하는 것 등. 뭐 쉽사리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나의 판타지로 종결되곤 하지만..그래서 현실 적응 판 플랜도 적어나가다 보면 비닐에 포장된 채로 건어물상에 쌓아져있는 힘없고 건조하기 짝이없는 북어가 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딱히 의욕도 없고 왠지 내 적성은 백수인 것 같은 직감이 잦게 느껴져서 이것 저것 찾아 읽었다. 찾아 읽은 것, 우연히 읽은 것 을 종합해서 스스로 세뇌 세뇌 하다보니
오늘 드디어!!약 엄청나게 오랜만에 '뭐가 되려면 열심히 살아야 하겠구나/ 되는구나/ 그래야만 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오랜만에 위기의식과 동반된 느낌이라 감회가 남달랐다.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나는 17세에서 20세까지는 열심히 사는 것, 독기에는 자신있는 인간이었다. 그런데 언제가 부터 나의 영혼이 점점 자유로워지더니 동시에 바깥세상 맛도 약간 보면서 겉잡을 수 없이 해체주의자가 되었다가 2013년 11월 23일이 얼마 되지 않은 새벽에 '열띠미 살아야 겠다 헉!'이라는 생각에 돌아온 것이다.
 빡세게는 살아도 순응하는 스타일은 아니니까 이내 '열띠미 살아야겠다'라는 생각에 반기를 들었다. 뭐가 되려면 열띠미 살아야겠다>열띠미.....하.....우리나라에서 열띠미란 것은 곧 힘들게 사는 것을 말한다. 열심히랑 힘들게/괴롭게 사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거늘..
왜 우리는 이런 자학적인 멘탈리티를 가졌단 말인가?
행정고시 괴로운 생활.문화?시스템?멘탈? 뭐시가 잘못된것일랑가? 아니면 내가 성공의 너무 좁은 표본만을 알고 있는 걸까?

스페인 경제가 쉿 안좋다. 근데 그렇게 괴로워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못봤다........ 자학적인 사람은..한명도 못봤다. 스페인은 행복은 하지만 직업은 없을 수 있으므로 우리나라보다 뭔가 꽤 더 낫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독일 애들도 스페인어와서 자기 나라는 이렇지 않다고 한숨을 푹푹 내쉬며 죽는 소리를 하지만.. 내 독일 친구의 부모님은 은퇴한지 10년 정도 됐고 즉 일을 안한지 10년이 되었지만 자식 4명 대학 교육 시키고 있고 남들 휴가 갈 때는 스페인으로 프랑스로 한두달씩 여행을 다녀온다.
왜 나는 또 내가 뭔가 되려면 억누르고 괴로운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한국에서 뭔가 되는 길이란 이런 것 밖에 없나?

다른 나라는 어떤가? 내가 몇나라 구경은 못했지만..
스트레스의 정도가 상상을 초월. 땅 좁고 인구많은 나라에서 태어난 내 잘못인가요?
세상이 잘못되었더라하더라도 세상탓 하며 허송세월 보내는 것보다 개인적으로 행복을 찾아나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뭐 변호사가 되기까지 과정은 잘 모르겠지만 집에서 스페인에서도 불법인 대마초를 말아피며 여유의 냄새를 풀풀 풀기던 스페인의 한 변호사를 기억한다..................
 예전에는 외국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공부를 하게 된다거나 직업을 얻으면. 근데 요즘엔 가족이랑 같이 사는 소중함도 늦게 알았고, 친구들도 매우 소중하다고 생각하게 되서 왠만하면 한국에 사려고 한다. 사실 외국에 살면 아무리 말을 잘해도 외국인으로서의 한 끝 언어를 이해하는 그 약간의 사소한 차이가 조금씩 쌓이면 큰 고독이 되고 이것은 넘기 힘든 벽이라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서 그런 점도 있다.

2013년 11월 6일 수요일

자기만족

나는 회사를 다닐 때 부터 매달 기부하던 것을 백수가 되어서도 끊지 못하고 있다. 뭐 아주 적은 금액이라서 백수로 살아도 그 정도는 감당 할 정도이긴 하다. 수입은 전혀 없고 잔고를 갉아 먹으며 생활하고 있으니 계산기를 두들기자면 당장 중지 시켜야할 지출 내역이지만 왠지 미안해서 그냥 한달에 얼마간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이런 나는 좋은 사람일까?

한 지인의 직장 상사는 대학시절에는 화염병을 던지던 열렬한 운동권 학생이었고 지금은 정기적으로 장애인 단체에 기부를 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회식 문화에 대한 괴 취미로 내 지인에게 위염을 안겨줬고 다른 팀원들에게 적어도 가정의 화목을 도모해 주진 못했다. 또 내 지인은 아주 찜찜한 경로로 그에게 부인이 아닌 다른 여자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일까? 나쁜 사람일까?

사랑의 리퀘스트처럼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사연을 지켜보다가 손수건으로 눈가를 흠치며 기부를 하는 게 아니라면 요즘에 말하는 '착한 활동'이라는 것들은 신파적인 감정을 동반한다기 보다 '의식있는 인간인 나를 사랑하는 활동'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윤리'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이러한 활동들이 정말 '착한'것인지 갸우뚱 해진다.

한번 쓰고 버려지는 비닐 봉지 대신 에코백을 이용하자는 붐이 일었었다. 패션계는 헐리웃 배우들이 매고다니는 'I am not a plastic bag'을 출시해서 패셔너블하면서도 윤리적인 소비자가 될 것을 권유했다. 나는 이런 활동들을 비웃거나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 에코백 사용은 사람들의 의식이 진보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다. 다만 그런 것이 '착한'것인지 궁금할 뿐이다. 에코백에는 환경에 대한 가치보다 에코백을 들고다니는 스스로에 대한 사랑이 더 앞서 보인다.
 그래서 요즘 말하는 '착한 소비', '착한 마케팅'의 '착한'이 문득 불편하게 느껴진다. 이런 행위들로 나는 정말 착한 사람이 되는 걸까? 마치 개츠비를 사랑하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는 데이지처럼, 요즘 사람들의 '착한 소비'의 동기는 '착한 소비를 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사랑'인 것 같다.

착하다는 것은 뭘까? 차도와 인도가 구분없이 뒤섞여 정신없게 생활하는 뉴델리의 사람들이 기차 티켓을 끊기 위해 한 줄로 질서정연하게 서 있는 프랑크푸르트의 사람들 보다 나쁘다고 할 수 없지 않은가? '착한'과 '의식있는'은 구분 되어야 한다.

나의 글은 마치 '착한'이라는 단어에 대한 말장난 처럼 보이기도 한다. '착한'이 아니라 '의식있는' 정도로 고쳐 불렸다면 나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수 도 있다. 난 그냥 사람들이 이렇게 간단하게 자신이 착한 사람이 된다고 믿는 것이 불편할 뿐이다.

자기가 낳은 자식에게 최선을 다하는 엄마와 후원할 아이의 지역, 성별, 외모 까지 꼼꼼이 따져 기부하는 사람 중 누가 더 착한 사람일까?

우리는 보통 '착한'이란 단어에서 다른 사람 뒤에 자신을 놓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래서 그런지 이렇게 간단히 착해지는 행동들도 결국은 자기 만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2013년 11월 5일 화요일

잘 만나는 것보다 잘 헤어지는 게 더 중요하다

'잘 만나는 것보다 잘 헤어지는 게 더 중요하다'
작가는 이 문장에 '잘 헤어지는 것이 그 사람의 성숙도를 판가름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내 내 머리 속에 한 장면이 떠올랐고 나는 스크린에서 관객석을 바라보지만 실제로는 나를 볼 수 없는 영화 속 주인공의 눈동자를 대하듯 그 장면 속 사람에게 건방지게 '그래 넌 미성숙했었지..'라고 말했다. 그러는 동시에 '반면에 난 얼마나 성숙했던가'라고 생각하며 잠시 내 자신의 인격에 대한 우월감에 도취해 있었다.

살면서 한 번의 이별 만을 겪은 것은 아니기에 자연스레 나의 의식은 반추를 시작했고, 비록 그 애는 울었지만 환한 대낮 캠퍼스에서 꽤 깔끔하게 이별을 고했던 일도 떠올라 '그럼 그렇지' 라고 생각하며 나의 성숙도에 대한 확신에 증거를 더하던 중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너무 부끄러웠다. 기억이 희미하던 최근 연애의 끝 난 그냥 잠수를 타버렸던 것이다. 흐지부지 했던 연애의 끝물과 함께 정당화하기 어려운 나의 행동을 까맣게 잊은 채 최근까지 이어졌던 그 사람의 전화와 문자에 정말 끈덕지다며 화를 냈었다. 나 같은 것은 더 만나볼 가치도 없다고 판단해도 내게 전혀 억울하지 않을 처사일 법한데 수개월간 인내심을 갖고 나의 안부를 물어온 그 사람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 사람과의 '연애'라 불리는 사연에 얽힌 복잡한 사정을 차치하고, 그 사람이 나의 'Love of life'의 목록에 들어가는 지의 여부를 차치하고 그 사람 덕에 얼마간의 시간을 외롭지 않게 보낸 것은 분명한데 너무 일방적이고 이기적이었다는 생각이 이제서 든다. 그 때 내 심장이 어쩜 그리 무심했을까? 유리한 기억으로 끼워맞추던 나의 '성숙함'은 어느새 바닥에 내동댕이 쳐져 있다. 나라는 인간 이렇게 치사하기도 하구나.

나의 첫사랑은 나의 애정이 성에 차지 않았는지 섭섭한 마음에 나에게 이별을 고했다. 그의 투정이 이해가 가지 않았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만 나는 그를 붙잡지 않았다. 순탄하기만 바랬던 우리의 이야기를 악을 쓰는 장면으로 더럽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간단히 굴복했고 아주 행복하게 읽었던 동화책은 다시 펼치지 않는 것이 처음의 감흥을 오래 간직하는 방법이라 믿었다. 얼마 후 그 애가 먼저 연락했을 때 비로소 깨닳았다. 그 애는 나와 정말 헤어지고 싶언던 게 아니라 투정을 부린 거였다고. 하지만 동화책을 다시 펼치지 않으려는 나의 다짐은 너무 강했고 그 애의 방법은 잘못된 것이었다.

계속 이어지던 전화와 문자에 알았다고 조만간 밥을 한 번 먹자고 얘기해 놓고 또 바쁜 척을 했었다. 그가 아직 나에게 떨어질 정이 남아있다면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정중하게 다시 헤어지고 싶다.